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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Story/The Player

한국에 온 쿠바인, 유네스키 마야의 코리안드림

2010년 한화 이글스의 한대화 감독은 승리없이 무려 11패(era 9.15)만을 기록하고 있던 외국인 투수 호세 카페얀 (Jose Capellan)을 결국 퇴출시키고 멕시코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던 좌완투수 프랜시슬리 부에노(Francisley Bueno)를 영입했다.

 

한때 애틀란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의 기대주였었던 부에노는 후반기 총 9경기 출장, 1승 3패, era 9.10 에 그치며 이듬해 재계약에 실패하고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 

 

활약 자체는 그다지 눈에띄지 않았던 부에노였지만 나름 한국프로야구(KBO)역사에 족적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최초의 쿠바인(Cuban)이었기 때문이다.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한 부에노는 이후 다시 멕시코로 돌아갔는데 이후 메이지리그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현재까지 캔자스시티 로열스(Kansas City Royals)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팀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부에노는 아쉽게 포스트시즌 엔트리 진입에는 실패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최초의 쿠바출신 선수였던 프랜시슬리 부에노가 떠난 후 4년이 지난 2014년 7월, 두산 베어스는 5승 7패, era 6.21 의 활약에 그친 크리스 볼스테드(Christopher Volstad)를 방출하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우완투수 유네스키 마야(Yunesky Maya)를 영입했다. 마야는 당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는데 얼핏 평범해보였던 이 영입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그가 바로 앞서 소개한 프랜시슬리 부에노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프로야구에 진출한 쿠바인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25일, 두산 베어스에 공식 입단한 유네스키 마야>

 

 

유네스키 마야는 1981년생(34세)으로 2009년에 쿠바를 탈출했으며, 이듬해인 2010년 워싱턴 내셔널스(Washington Nationals)와 4년간 총 8백만달러에 계약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다. 같은해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에 입단한 또다른 쿠바출신 강속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Aroldis Chapman)이 6년간 총3천만달러에 계약한 것과 비교하면 마야의 계약은 상대적으로 작아보이지만 이는 채프먼이 마야보다 7살이 어리기 때문이었지 마야에 대한 기대감이 결코 적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마야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팀들은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등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야는 MLB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되며 많은 관심속에 워싱턴 내셔널스에 입단했다.>

 

 


마야는 MLB에 진출하기 전 쿠바리그(Cuban National Series)에서 총 6시즌동안 활약했으며 통산 성적은 48승 29패, era 2.51 로 쿠바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었다. 당시 마야의 소속팀은 피나르 델 리오(Pinar del Río) 였는데 이 팀 출신으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선수인 호세 콘트라레스(José Contreras, 199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맞대결), 페드로 루이스 라조(Pedro Luis Lazo,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맞대결)가 있었으며 현재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 주전 유격수인 알렉세이 라미레즈(Alexei Ramírez) 와는 한동안 같이 활약했었다.

<2009 WBC에서 팀동료이자 쿠바 국가대표 에이스, 페드로 라소와 하이파이브 중인 마야>

 

 


2003년 쿠바 내셔널리그에 데뷔한 마야는 2004년 주로 중간계투로 36경기에 출전, 89.2 이닝동안 5승 2패 7세이브, era 1.61 을 기록하여 바로 팀의 주축선수가 되었으며 2006년에는 팀의 마무리투수로서 6승 3패 13세이브, era 1.40 으로  크게 활약했다. 대부분의 하위리그가 그렇듯 마야 역시 공 좀 던지기 시작하니 선발과 불펜을 오고가기 시작했는데 2008년 비로소 선발투수로 안착한 마야는 21경기 146이닝동안 13승 4패, era 2.22 의 기록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쿠바리그에서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A급 선수가 된 마야는 당연히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2006년과 2009년에 있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였다. 당연히 메이저리그에서도 피나르 델 리오의 에이스인 마야에 대해 진작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행보 역시 시시각각 주목의 대상이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난 후 멕시코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마야는 그해 9월 기어이 쿠바를 탈출하였고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하였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었던 마야는 이듬해인 2010년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하였고 그해 9월 오랫동안 꿈꿔왔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입단 후 다섯번의 마이너리그 시험등판에서 21.1이닝동안 era 3.38을 기록한 마야는 9월, 바로 MLB에 콜업되었고 곧 데뷔전 상대가 9월 7일 뉴욕 메츠로 결정되었다.  

<유네스키 마야, 드디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다>

 

 

9월 7일 드디어 뉴욕 메츠전에서 선발등판한 유네스키 마야는 1회부터 고전을 면치못했다. 역시 루키였던 메츠의 1루수 아이크 데이비스(Ike Davis)에게 허용한 3점홈런이 뼈아팠다. 홈런을 허용한 이후에는 씩씩하게 잘 던져줬지만 마야는 5이닝 5피안타 4실점으로 데뷔전에서 메이저리그 첫번째 패배를 기록했다. 너무 빠른 데뷔탓인지 이후에도 4번의 선발등판 기회가 더 마야에게 주어졌지만 2010년 마야의 최종 기록은 5경기에서 26이닝 무승 3 패, era 5.88 에 그쳤다. 그리고 슬슬 그의 영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즉시전력감으로 높이 평가되었던 마야의 부진에 대해서 그의 투수코치였던 스티브 맥카티(Steve McCatty)의 의견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마야가 문화적 충격으로 현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메이저리그에서 좀더 쓸만한 선수가 되려면 그의 피칭에 대한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마야는 언어부터 시작해서 미국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투수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탭과도 원활한 관계를 이루질 못하고 있었다. 투수코치는 다소 투박해보이는 그의 투구폼부터 대부분의 피칭동작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마야는 19살짜리 풋내기 선수가 아닌 쿠바의 국가대표 출신 선수였다. 당연히 이제와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러한 과도한 발언들은 마야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2011년 5얼 29일 톰 고르질라니(Tom Gorzelanny)가 부상자명단(DL)에 오르자 다시 마야에게 기회가 주어지긴 했으나 샌디에고 파드리스(San Diego Padres) 전에서 6피안타 4실점하면서 5회에 강판되었다.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마야는 드디어 선발등판 10경기만에 자신에게 첫 패전을 안겨준 메츠를 상대로 5.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간신히 데뷔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승리가 유네스키 마야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승리였다.

 

<메츠전에서 5.1이닝 무실점 호투로 데뷔 후 첫 승리를 따낸 마야가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후 마야에게는 더이상 선발등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9월 다시 콜업되었을 때는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로 이미 보직을 변경한 뒤였다. 그나마도 단 5경기 출장에 그친 마야는 더이상 팀의 관심대상이 아니었으며 곧 주축선수들의 트레이드시 가끔 언급되는 패키지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위해 고향까지 등지고 망명길에 올랐던 피나르 델 리오의 에이스, 유네스키 마야는 많은 기대속에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지만 이렇게 단 10경기(1승 4패)만에 실패작으로 낙인되었으며 2013년 시즌종료 후 팀에서 방출되었다. 쿠바 출신의 순박한 청년인 마야가 감당하기에는 메이저리그는 너무도 비정한 정글이었던 셈이다.

 

2014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약하던 중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마야는 한국무대에서 2승 4패, era 4.86으로 아쉬운 활약에 그쳤지만 2015시즌 재계약에 성공했다. 조금 의외의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팀 내부에서도 마야와 재계약하는 것에 논란이 조금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찌되었던 한국에서 다시 기회는 주어졌고 그 선택의 희비는 마야 본인에게 달려있다.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그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이 다시 이곳에서 반복될 것이고 어느덧 34세가 되어버린 그에게 남아있는 기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작년 마야가 안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처럼 상대팀들은 그의 약점을 찾아내어 집요하게 괴롭히려 할 것이다.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 후 인터뷰에서 한국의 야구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인정한 마야는 새 시즌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와라 역시 마야가 반드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두산 베어스에는 실력과 인격, 모든 면에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더스틴 니퍼트(Dustin David Nippert) 라는 아주 훌륭한 멘토가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키 마야와 더스틴 니퍼트는 의외로 동갑이다.>

 

 

2010년 쿠바 출신으로 한국프로야구에 최초로 진출한 프랜시슬리 부에노에게 메이저리그에서 주어진 기회는 단 1경기였다. 그 후 한국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쓸쓸히 멕시코로 돌아간 부에노였지만 그는 계속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않았고 2012년 다시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다. 첫번째 도전에서 단 1경기만에 방출된 부에노는 2012년 다시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토록 고대하던 메이저리그 첫 승을 따내기도 하는 등 현재까지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부에노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프로야구를 찾아온 쿠바인, 유네스키 마야에게도 이런 일들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유네스키 마야의 코리안 드림은 이제서야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