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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Story/The Legend

일본프로야구(NPB) 최초의 퍼펙트피쳐, 후지모토 히데오

일본프로야구(NPB) 최초로 퍼펙트 게임(perfect game)을 달성한 "후지모토 히데오" (Hideo Fujimoto)는 일제 강점기하인 1918년 부산 동래군 출신으로 한국 이름은 "이팔룡" (李八龍)이다.

 

8살때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주하면서 일본식 이름인 후지모토 하치류(藤本 八龍)로 개명했으며 이후 후지모토 히데오(藤本 英雄), 나카가미 히데오(中上 英雄)로 다시 개명했다. 일본야구의 전당에는 최종 이름인 나카가미 히데오로 헌액되어 있지만 보통 후지모토 히데오로 불려지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 피처, 후지모토 히데오의 본명은 "이팔룡"이다.>

 

 

현재 초등학교 개념인 소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한 히데오는 시모노세키상고로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능을 발휘했으며 1935년과 1937년엔 코시엔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교 졸업후 메이지 대학으로 진학한 히데오는 2학년때부터 주전투수로 활약했으며 재학동안 34승 9패라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42년 추계리그(당시 일본프로야구는 춘계리그와 추계리그로 나누어 진행되었다.)를 앞두고 "도쿄 교진군"(東京 巨人軍,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지모토 히데오는 총 14경기에 출전하여 10승 무패, era 0.81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1943년에는 5월 22일 나고야군(名古屋軍, 현 주니치 드래건스)과의 대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등 56경기(선발 46경기)에서 34승 11패, era 0.73 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후지모토 히데오는 요미우리 1차 황금시대의 주역이다>

 

 

당시 교진군은 총 84경기에서 54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54승 중 34승을 후지모토 히데오가 거둔 것이다. 게다가 34승 중 19승이 완봉승(Shut-Out)이었는데 이는 NPB통산 단일시즌 최다 완봉승 기록이며 0.73의 평균자책점(era) 역시 단일시즌 최저 평균자책점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않은 채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1944년 당시 전황이 불리해지자 많은 선수와 코치들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불려갔으며 극심한 인력난에 히데오는 팀의 주축투수이면서 감독까지 겸하게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단 25세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연소 감독이 되는 순간이었다. 감독까지 겸직하면서 마운드에 선 히데오는 10승 8패, era 1.59로 분전했지만 단 35경기만을 치루고 리그가 중단되었으며 팀은 잠정적으로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1946년 후지모토의 투구 모습>

 

종전 후인 1946년, 다시 프로야구가 부활하자 팀에 복귀한 후지모토 히데오는 21승을 거두며 여전한 구위를 과시했지만 갑작스럽게 감독자리를 박탈당하자 이에 반발하여 주부니혼(中部日本, 현 주니치 드래건스)으로 이적해버리고 말았다. 1947년 그는 새로 이적한 팀에서 17승을 거두긴 했으나 동시에 15패를 기록하는등 무언가 이상신호가 감지되었고 그 원인이 어깨부상으로 밝혀지면서 시즌 종료 후 팀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1948년 방출 후 가까스로 요미우리에 복귀했지만 히데오는 단 8승만을 거두며 어깨부상에 시달렸다. 재활에 전념하면서 새로운 구종을 연마하기 시작한 히데오는 각고의 노력끝에 새로운 변화구, 슬라이더를 완성하게 되었다. 슬라이더 제구가 완성되면서 거짓말같이 어깨통증이 사라져버린 후지모토 히데오는 1949년 다시 24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28일, 아모모리 구장에서 벌어진 니시니혼 파이리츠(추후 세이부 라이온스에 합병)전에서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 게임" (Perfect Game)을 달성하면서 새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미 치명적인 어깨부상으로 방출된 경험이 있는 후지모토 히데오의 극적인 부활스토리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일본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고 곧 일본 전역에 화제가 되었다. 이후 요미우리의 경기중 후지모토의 선발등판 경기는 한동안 더욱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퍼펙트 게임 달성후 그의 등판은 더욱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재기 후 1953년까지 매년 15승 이상을 달성한 후지모토 히데오는 1955년 자신의 통산 200번째 승리를 달성한 후 미련없이 은퇴를 발표했다. 그의 통산성적은 14년간 367경기 출전, 200승(63완봉승 포함) 87패, era 1.90, 탈삼진 1,177개이며 통산 승률(0.697), 통산 평균자책점(1.90), 단일시즌 평균자책점(0.73), 단일시즌 최다완봉승(19승) 기록은 현재까지도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기록으로 남아있다. 

 

은퇴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등에서 코치등으로 활동한 후지모테 히데오는 1976년 일본야구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훗날 모국을 방문한 그는 일본인으로 귀화를 선택한 것에 대하여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자책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야구의 전당에 헌액된 후지모토 히데오의 동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