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 Story/Hitting

"야구의 꽃" 홈런으로 살펴보는 한국프로야구

WaRa 2015. 1. 27. 11:52

흔히 "야구의 꽃"으로 불리는 시원한 홈런 장면은 야구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야구에서는 이런 홈런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외야펜스를 넘어가는 타구를 파울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뭐?? 외야펜스를 넘어가는 타구가 파울이라고??? 현대의 야구팬들이라면 기절한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초창기 야구장은 외야가 굉장히 넓었기 때문에 타자가 친공이 펜스를 넘어가는 일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외야 펜스란 개념자체가 없었다.)

 

당시의 홈런이라 함은 흔히들 러닝홈런 (running homerun), 혹은 그라운드홈런(ground homerun) 이라 불렀던 인사이드 파크 홈런(Inside-the-Park Home Run)  이었다. 즉, 안타 하나에 직접 홈베이스에 도착하여 득점함으로써 명칭이 home - run 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언젠가부터 외야펜스를 넘기는 타구도 홈런으로 분류했지만 그래도 야구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중이란 미미했다. (왜냐하면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1920년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로 이적한 베이브 루스 (George Herman Ruth)가 연일 엄청난 홈런을 담장밖으로 날려버리면서 야구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했다. 시원하고 짜릿한 묘미를 주는 홈런은 매일같이 엄청난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였고 흥행수익에 도취된 각 구단들은 경쟁적으로 외야펜스를 앞당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전까진 좀체로 볼 수 없었던 거포유형의 타자들. 즉, 슬러거 (slugger)라 불리는 전설적인 타자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현대야구의 꽃"이라 불리는 "홈런(Homerun)"의 시대가 온 것이다.

<홈런으로 야구인기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베이브 루스>

 

 

승부의 향방을 가르는 한방의 홈런. 초창기 한국프로야구(KBO)는 그 개막전부터 심상찮은 홈런들이 폭발했는데 이 홈런이 주는 짜릿함은 금방 팬들에게 확산되었고 야구가 일치감치 국민스포츠로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럼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프로야구(KBO)를 빛낸 홈런타자들은 누가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1. 이만수

1982년 3월 27일, 한국프로야구(KBO)는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그 역사적인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의 이만수는 MBC 청룡 유종겸을 상대로 한국프로야구 통산 제1호 홈런을 쏘아올리는 주인공이 되었다.

 

이만수는 명실공히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타자로 한국프로야구 제1호 홈런뿐 아니라 개인통산 100호 홈런, 200호 홈런까지 최초로 달성한 홈런 제조기였다. 

 

삼성 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것은 당연했고 특유의 친근한 이미지로 다른 구단 야구팬들에게도 폭넓게 사랑받았던 이만수는 항상 화제의 주인공이었지만 개막축포까지 쏘아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날만큼은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였던 이만수>

 

 

2. 이종도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스의 프로야구 첫 개막전 경기는 상징적 의미를 뛰어넘는 역사적인 명승부 중 하나이다. 경기초반 타선이 터진 삼성이 여유있게 리드했지만 후반 MBC가 맹추격했고 스코어 7 : 7 상황에서 양팀은 연장승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10회말 2사 만루 상황. MBC 청룡의 이종도가 삼성 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grand slam)이라는 거짓말같은 홈런을 터뜨리면서 한국프로야구(KBO)는 그 시작부터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한국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리는 이종도>

 

 

3. 김유동

1982년 OB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벌였던 첫번째 한국시리즈(당시 코리안 씨리즈 ㅋㅋ) 6차전경기에서 OB 베어스의 김유동은 삼성의 이선희 투수를 상대로 9회초 한국시리즈 첫번째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이 홈런으로 한국프로야구 첫번째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영예는 OB 베어스가 가져갔으며 만루홈런의 주인공인 김유동은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반면 그해 15승 투수이자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였던 이선희는 시즌 첫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모두 만루홈런을 허용하면서 비운의 투수로 불리게 되었다.

<김유동은 1982년 첫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4. 김봉연

1982년 초대 홈런왕은 해태 타이거즈의 김봉연이 차지했으며 그는 총 2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김봉연은 훗날 개인통산 첫 100호 홈런을 두고 이만수와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아쉽게도 이만수에게 한끝 차이로 밀리게 되었다. 

 

<김봉연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콧수염은 그를 더욱 강해보이게 했다.>

 

 

5. 김성한

김성한은 검빨 유니폼으로 상징되는 해태 왕조의 중심타자이자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다. 특히 찬스에 매우 강했던 김성한은 1988년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단일시즌 30홈런을 달성하면서 홈런왕에 등극했다. 

<김성한의 특유의 오리궁둥이 타법>

 

 

6. 유두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가 격돌했다. 시리즈 내내 롯데의 최동원이 혼신의 투구를 다한 시리즈로서 마지막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였다.

 

마지막 7차전 지친 최동원이 연이어 실점하면서 패색이 짙었던 롯데는 8회 4 : 3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두열이 삼성투수 김일융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 3점 홈런을 뽑아내면서 첫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하였다. 

<1984년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유두열>

 

 

7. 장종훈

연습생 신화의 첫번째 주인공인 장종훈은 빙그레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이끌었던 홈런타자이다. 그는 1992년 41개의 홈런으로 홈런왕에 등극하면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단일시즌 40홈런을 기록했다.

 

장종훈은 1998년 OB베어스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Tyrone Woods)가 나타나기 전까지 KBO에서 유일한 40홈런 타자였다.

<장종훈은 통산 340홈런을 기록하고 2005년에 은퇴했다.>

 

 

8. 이승엽

음. 뭐. 굳이 설명을 해야할까 싶다. 간단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홈런타자. 이걸로 끝이다. 이승엽의 홈런은 그 양도 양이지만 특히나 중요한 승부처에서 터지는 경우가 많아 질적인 가치가 엄청나다는 특징이 있다.

 

1999년 54개의 홈런으로 홈런왕에 등극한 이승엽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50홈런 타자였으며 2003년 6월 22일에는 한국프로야구(KBO) 통산 첫 300호 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2003년 10월 2일에는 56번째 홈런을 기록하면서 일본프로야구(NPB)의 홈런왕인 오 사다하루 (Sadaharu Oh)의 단일시즌 홈런기록인 55개를 경신했다. (물론 일본에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2015년 중으로 한국프로야구 개인통산 첫 400호 홈런 역시 이승엽이 기록할 것이다. (현재 390개)

<국민타자 이승엽, 내년에도 그리고 내후년에도 계속 선수로 남아있기를..>

 

 

9.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대호는 어마어마한 체격으로 상대투수를 위압하는 진정한 거포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010년 8월 4일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9경기 연속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메이저리그(MLB) 나 일본프로야구(NPB)에는 없는 세계신기록으로 당시 상대투수는 기아 타이거즈의 김희걸(현재 김건한)선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10년 타격부문 7관왕이라는 또 하나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한국프로야구의 간판타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대호는 현재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4번타자로 활약하고 있다.>

 

 

10. 나지완

2009년 한국시리즈 기아 타이거즈와 SK와이번스의 7차전 대결은 한치앞도 예상하기 힘든 접전이었다. 경기중반 SK 와이번스에게 5 : 1까지 밀리며 허망하게 물러나는가 싶었던 기아가 조금씩 추격하며 간신히 5 : 5 동점을 만든 순간.

 

잠실야구장을 가득채운 팬들을 향해 기아 타이거즈의 나지완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선물했다. 아마도 타이거즈의 통산 10회 한국시리즈 우승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은 실로 번쩍이는 한방이었고 이내 잠실구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감동적인 한방이었다. 

<2009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순간의 나지완, 새로운 슬러거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