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Story/The Player

"옥춘이" 크리스 옥스프링의 끝나지 않는 여행...

WaRa 2015. 2. 5. 12:48

2014년 12월 한국프로야구(KBO)의 10번째 심장인 kt wiz(위즈) 는 팀의 4번째 외국인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크리스 옥스프링(Chris Andrew Oxspring)과 계약했다.

 

계약조건은 1년간 총 35만달러. 이로써 2015년 만 38세가 되는 크리스 옥스프링은 2007년 LG 트윈스, 2013년 롯데 자이언츠를 거쳐 KT 위즈까지 한국에서만 6번째 (실질적으론 5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야구 불모지였던 호주(Australia) 출신으로 짧지만 메이저리그 (MLB)까지 경험했던 옥스프링은 2009년 치명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더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어느 순간 한국으로 돌아왔고 또 누구보다 오래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먼길을 떠나야 했던 야구소년 옥스프링의 기나긴 여정을 한번 따라가 보았다.

 

<2007년 엘지 트윈스에 입단한 옥스프링, 아직까진 훈남의 모습이다.>

 

 

1977년생 호주 입스위치 (Ipswich, Australia)출신인 크리스 옥스프링은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공놀이를 좋아했다. 13살때 처음 투수로 볼을 던지기 시작한 옥스프링은 18살때 프로야구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당시 호주에선 불가능한 꿈이었다. (당시 호주에는 프로팀이 없었다.)

 

23세가 되자 무작정 "야구의 나라" 미국으로 날아간 옥스프링은 시카고의 한 독립구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선수의 세계에 입문했고 곧 트라이아웃(try out)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고 샌디에고 파드리스(San Diego Padres) 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샌디에고 시절, 20대 초반의 풋풋한 모습>

 

 

운좋게 소속팀을 구할 순 있었지만 이후 생활을 순탄하지는 않았다. 기나긴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된 것.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던 마이너리그 생활중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호주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 국가대표가 된 옥스프링은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당시 일본국대 멤버는 마스자카 다이스케 (Daisuke Matsuzaka), 우에하라 고지 (Koji Uehara), 이와세 히토키 (Hitoki Iwase), 마쓰이 가즈오 (Kazuo Matsui), 후쿠도메 코스케 (Kosuke Fukudome), 조지마 겐지 (Kenji Johjima), 와다 쓰요시 (Tsuyoshi Wada)등이 포진하고 있었고 감독은 나가시마 시게오 (Shigeo Nagashima)였다. (이런 팀을 보통 "드림 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팀을 상대로 선발등판한 "마이너리거" 옥스프링은 6 2/3이닝 무실점이라는 눈부신 호투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고 호주는 일본을 2 : 0 으로 제압하고 결승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되었다. (당시 결승전 상대는 쿠바였는데 호주는 6 : 2 로 패해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일본 대표팀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선발라인업에 위치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훗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정도로 화려하지 그지없었다. 하지만 당시까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고 있던 옥스프링에 철저히 막힌끝에 영봉패하면서 일본국가대표는 결승진출이 좌절되었고 이경기를 지켜보고있던 일본 야구관계자들은 옥스프링이란 투수에 주목하게 되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옥스프링이었지만 메이저리그는 그런 거 신경안썼다. 이듬해인 2005년 잠시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5경기. 실망스런 숫자였지만 옥스프링의 야구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호주 국가대표 유니폼 착용샷>

 

 


2006년 크리스 옥스프링은 일본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즈(Hanshin Tigers)에 입단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눈부신 호투가 계기가 된 것이다. 야구를 하기위해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옥스프링은 6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고 새로운 곳에서 드디어 야구선수로서 만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일본에서의 생활을 순탄하지 못했다. 옥스프링은 16경기에서 단 77이닝만 소화했으며 4승 3패, era 5.12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당시 한신 타이거즈에 JFK로 불리는  막강 불펜진이 있었음을 감안했을 때 매우 아쉬운 성적이었다. 아직은 미완의 대기였던 것이다.

<2006년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한 크리스 옥스프링>

 

 

시즌 종료후 재계약에 실패한 옥스프링은 체념하지 않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밀워키 브루워스(Milwaukee Brewers) 와 마이너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해 7월 부진에 빠진 팀 하리칼라(Timothy Harikkala)를 대신할 외국인 선수를 찾던 LG 트윈스의 레이더에 포착되면서 이번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2007시즌 후반기 14경기에세 4승 5패, era 3.24를 기록한 옥스프링은 합격점을 받았고 2008년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2008년 한국야구에 적응을 마친 옥스프링은 시즌내내 봉중근과 함께 팀을 지탱했으며 10승 10패, era 3.93을 기록했다. 또한 2009년에도 함께하기로 계약하면서 이제는 엘지 트윈스에 정착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9년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옥스프링은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을 앞두고 팔꿈치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고민끝에 수술하기로 결정한 옥스프링은 이제 막 정이든 엘지 팬들을 뒤에두고 기약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을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잠실구장을 찾은 옥스프링과 가족, 이렇게 어렸던 아이들이..>

 

 

<2014년 가족과 함께 인터뷰 중, 지금은 이렇게들 많이 컸다.>


 

수술 후 한동안 엘지 구단과 팬들은 그를 기다렸지만 옥스프링의 팔꿈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2011년 통증이 사라지자 옥스프링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Detroit Tigers)와 마이너계약을 하면서 다시 미국에서 재기의 길을 모색하지만 구위는 예전같지 않았고 곧 방출되었다. 34살이 되어버린 옥스프링은 쓸쓸이 호주로 돌아가야만 했다.

 

3자녀를 아버지인 옥스프링은 호주로 돌아와서 은행에 취직했다. 이때까지도 그의 회복에 관심을 두었던 엘지 트윈스도 옥스프링의 취업 소식을 접하고 더이상 그에게 미련을 놓았다.

 

이젠 더이상 그가 유니폼을 입을 일은 없어보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옥스프링은 야구공을 손에 놓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듯 좋은 공을 던지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3년 시드니 블루삭스 (Sydney Blue Sox)에서 코치겸 선수로 활약하고 있던 크리스 옥스프링은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앞두고 다시 호주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13년전 아테네올림픽 호투가 계기가 되어 일본과 한국에서 기회를 잡았던 옥스프링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또 한번의 국제대회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고 역시나 그의 노력은 외면받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때문에 고생하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가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이미 예전에 끝난줄 알았던 한국야구와의 인연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한 크리스 옥스프링>

 


2013, 2014시즌 연속으로 10승을 달성한 옥스프링은 2015년을 앞두고 아쉽게 롯데와 결별했다. 내년에 반드시 성적을 내야하는 롯데 입장에선 이젠 38살이 되어버린 그의 나이를 무시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옥스프링은 또다시 kt 위즈와 계약하면서 한국야구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23살때 혈혈단신 시작한 야구선수로서의 여정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옥스프링은 꽤나 오랜기간 선수생활을 했지만 아쉽게도 화려했던 순간은 없었다. 그는 단 1시즌만이라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며 그의 소속팀은 언제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어찌보면 극히 평범한 선수지만 희한하게도 그는 누구보다도 오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옥스프링은 2015년 한국에서의 5번째 시즌을 신생구단인 kt 위즈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2007년 풋풋한 훈남이었던 그도 이제 푸근한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의 공은 여전히 살아있다.

 

인터뷰를 통해 당분간 은퇴생각은 절대 없다고 밝힌바 있는 옥스프링의 여정은 과연 어디까지 계속될까? 확실한 것은 아직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젠 푸근한 아저씨가 된 크리스 옥스프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