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의 아이들
2014년 3월 30일 LG 트윈스의 슈퍼루키 임지섭은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 2차전에 전격적으로 선발등판했다.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씩씩하게 공을 던진 임지섭은 두산 타자들을 상대로 5이닝동안 1실점만을 허용했고 주장 이진영의 만루홈런등 타선이 폭발하면서 1군데뷔 첫 승리를 따내게 되었다.
고졸 신인선수가 데뷔 첫경기에 선발등판하여 승리를 거둔 것은 이번이 4번째인데 2006년 4월 12일 류현진이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이후 8년만에 나온 진기록이었다. 참고로 4월13일 넥센 히어로즈의 고졸 신인 하영민이 한화를 상대로 똑같이 데뷔 첫 선발승을 기록했는데 고졸 신인선수의 데뷔전 선발승이 연이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군 데뷔 첫 선발등판한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며 화려하게 등장하는 듯 싶었던 임지섭은 그러나 곧 프로의 높은 벽에 부딪쳤고 제구에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며 2군으로 내려갔다. 이때까지 임지섭의 기록은 4경기 출전에 1승 2패, era 6.75 였는데 결룰 이것이 2014시즌 최종기록이 되고 말았다.
4월 29일 NC전 패전 후 임지섭이 2군에 내려간 사이 LG 트윈스 새 감독으로 양상문 감독이 부임했다. 어차피 팀 성적도 바닥을 기고 있었던만큼 임지섭과 같은 영건들이 중용될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신임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임지섭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양상문 감독은 임지섭은 2016년 등판을 목표로 투구폼을 처음부터 새로 교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4년은 그렇다 쳐도 2015년에도 그를 볼 수 없다고 하니 감독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2015시즌을 앞두고 한창 스프링캠프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양상문 감독 부임이후 1군은 커녕 2군 경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임지섭이 스프링캠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보다 간결하고 깔끔한 투구폼으로 교정한 임지섭의 투구 모습에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이 느껴지지만 올시즌 그의 활약여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롯데시절 장원준을 수준급 좌완투수로 성장시킨 것으로 알려진 양상문 감독이 과연 임지섭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을 하나 놓치고 있는데 과거 양상문 감독이 공들였던 아이들 상당수는 롯데가 아닌 바로 지금 LG에 있다.
<임지섭은 190cm, 94kg의 좋은 하드웨어를 갖고 있는 영건이다.>
2001년 경기고를 졸업한 신인 투수 이동현은 150km이상의 강력한 속구와 포크볼을 무기로 입단 첫해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않고 33경기에 등판했으며 105 2/3이닝을 던지며 4승 6패, era 5.37을 기록했다. 2002년 새로운 투수코치를 만난 이동현은 분명 불펜투수임에도 불구하고 78경기 "124 2/3" 이닝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등판기록을 남기며 8승 3패 7세이브, era 2.67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에게 2년차 징크스같은 것은 없었으며 시즌 초반 일치감치 무너진 마운드를 지키기 위해 경기중 아무때나 등판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엘지 트윈스는 시즌초반 부진에서 탈출했고 포스트시즌에도 나갈 수 있었다. 팀은 아쉽게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동현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계속되었고 총10경기에서 3승, era 1.99 를 기록했다. 이래저래 눈부신 활약이었다.
그러나 2003년 갑작스레 선발로 전환한 이동현은 4승 10패, era 4.05로 부진했으며 2004년에는 또다시 불펜으로 전환하여 48경기 1승 3패 12세이브, era 2,87을 기록했다. 고교 졸업후 4년간 엘지에서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등판했던 이동현은 2004년 8월 결국 팔꿈치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으며, 3번의 토미존 수술을 받아야 했다. 부상재발과 재활로 고통스러 시련을 이겨낸 그가 다시 1군 경기에 모습을 비친 것은 2009년 5월 20일 무려 5년이란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입단당시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뿌렸던 이동현의 이날 최고구속은 138km를 기록했다.
<LG팬들에게 아픈 손가락인 이동현, 못해도 되니 오래만 했으면 한다.>
휘문고 출신의 사이드암 투수인 우규민은 2003년 LG 트윈스에 입단했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경기에 출전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활약하던 우규민은 2006년 마무리투수로 등판하면서 62경기 75.2 이닝을 던지며 3승 4패 17세이브, era 1.55 의 수준급 활약으로 차기 마무리감으로 확정되었다.
2007년 새로운 투수코치와 함께 본격적으로 마무리투수로 출전한 우규민은 62경기에 출전, 5승 6패 30세이브, era 2.65 를 기록하였고 삼성 라이온스의 오승환에 이어 세이브 부문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본래부터 허리디스크 증세가 있었던 우규민의 공은 잦은 등판으로 인하여 갈수록 위력이 떨어졌고 후반기부터 난타당하기 시작, 그해 무려 13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한번 나빠진 허리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고 이후부터 우규민의 평균자책점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8년 3승 7패 10세이브에 그친 우규민의 era는 무려 4.91이었으며 2009년 7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그의 era는 5.70 이었다. 계속되는 부진과 날로 증가하는 블론세이브 갯수로 인하여 우규민은 엄청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투수로서 자신감마저 상실한 상황에서 우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결국 시즌 종료 후 그는 군 입대를 결정했다. 2007년 엘지 트윈스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마무리 투수 우규민은 불과 2년뒤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우규민은 2014년 팀내 유일한 10승 투수이다.>
2008년 입단한 광주일고의 에이스 정찬헌은 듬직한 체구에 묵직한 공을 뿌리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시즌초반 바로 1군에 등장한 정찬헌은 처음 불펜으로 출발했지만 팀 사정상 바로 5선발로 투입되었다. 5월 20일 삼성전에서 7이닝 2피안타 무실점이라는 눈부신 호투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묵직한 직구외엔 별다른변화구 하나 없었던 신인투수 정찬헌은 곧 난타당하기 시작했다.
선발로 나선 후 정찬헌의 성적은 1승 12패, 참담한 성적에도 어쩔수 없이 계속 등판했던 정찬헌은 후반기 다시 불펜으로 복귀했지만 이미 체력도 의욕도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고 39경기 3승 13패 era 5.50 라는 아쉬운 기록만을 남긴채 시즌을 마감했다. 일찌감치 신인왕감으로 예상되었던 정찬헌은 그 해 최다패 투수가 되었다.
2009년 엘지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천후 불펜으로 투입된 정찬헌은 다시금 반짝 활약에 그쳤고 55경기 76 이닝간 출장하여 작년과 별다를 것 없는 성적인 6승 5패, era 5.78 에 그쳤다. 2008년부터 불펜과 선발을 오고가며 마구잡이로 등판한 정찬헌은 팔은 겨우 2년만에 망가졌고 시즌 종료후 수술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벼운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을 것이라는 구단의 발표가 있었지만 정찬헌이 다시 마운드에 모습을 보인것은 2013년 7월 26일 무려 1,442일이 지난 뒤였다.
<엘지팬들에게 또 하나의 아픈 손가락, 정찬헌의 투구모습>
2007년 1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국내로 복귀한 봉중근은 기대와는 달리 6승 7패 era 5.32 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봉미미"라는 달갑지않은 별명도 얻게되었다. 하지만 2008년 한국야구에 적응한 봉중근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되었고 28경기 186 1/3 이닝(그해 최다이닝 소화)을 던지면서 11승 8패, era 2.66 을 기록, 암흑기 LG 마운드의 구세주가 되었다.
하지만 꾸준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타선의 엇박자와 부실한 불펜은 봉중근의 승리를 지키지 못했고 그의 이름앞에는 "봉크라이"라는 또다시 달갑지 않은 별명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암흑기 엘지 마운드를 거의 혼자 지탱하다시피한 봉중근의 팔은 결국 혹사를 이겨내지 못했고 2011년 단 4경기만에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봉중근, 그가 없는 엘지마운드는 상상조차 하기싫다.>
이동현, 우규민, 정찬헌, 봉중근은 모두 현재 LG 트윈스 마운드의 주축투수들이다. 이동현은 팀내 첫번째 셋업맨이며 올해부터는 봉중근을 대신하여 투수조 조장이 되었다. 2013년부터 선발투수로 전업한 우규민은 사이드암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2년연속 10승을 달성했고 팔꿈치 수술 후 복귀한 봉중근은 마무리 투수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예전 구위를 되찾은 정찬헌은 장래 마무리 투수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양상문 감독은 이 4명의 선수들과 영건시절 모두 함께했다. 이동현이 불펜과 선발, 다시 불펜을 오고가면서 경악스러운 이닝을 소화했던 2002년과 2003년, 우규민이 마무리 투수로 화려하게 떠올랐다가 추락했던 2007년과 2008년, 봉중근이 미국에서 돌아와 고전했던 2007년과 반등할 수 있었던 2008년, 정찬헌이 프로의 벽을 넘지못하고 시즌 최다패 투수가 되었던 2008년 모두 투수코치는 양상문이었다.
<2008년 옥스프링, 조인성에게 작전지시를 하고있는 당시 양상문 투수코치>
2014년 선발과 불펜을 오고가고 있었던 임정우는 승리없이 5패만 안고 있었다. 계속되는 패전으로 더이상 선발로 투입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졌지만 양상문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고 7월 5일 NC전에서 기어이 선발승을 거둔 후에야 불펜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더이상 임정우의 패전은 기록되지 않았다.
2013년 전형적인 땜빵 선발투수였던 신재웅은 후반기 몇경기에서 호투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이상을 기대하기는 사실 무리였고 2014시즌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모두 초반에 난타당하며 실낱같은 기대마저 접게 만들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 부임이후 불펜으로 전환한 신재웅은 갑자기 150km에 가까운 강속구를 뿌리는 파이어볼러로 변신했고 불펜에서만 시즌 8승을 거두었다.
봉중근과 달리 데뷔 첫해부터 12승을 거두며 엘지를 포스트시즌까지 진출시킨 류제국은 2014년에는 유독 시즌 초반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는 곧 슬럼프로 이어졌고 승리의 요정이었던 작년과는 달리 좀처럼 승수가 늘지 않았다. 후반기 컨디션 난조롤 초반에 무너지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지만 양상문 감독은 변함없이 그를 계속 기용했다.
그리고 임지섭은 전술한 바와 같이 2군에서 류택현 코치에게 1 : 1 지도를 받으며 전혀 새로운 투수로 변모하고 있다. 신동훈, 윤지웅, 최동환, 장진용 등과 같은 새로운 얼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2014시즌 류제국의 부진은 무릎부상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상문 감독은 투수코치 시절, 엘지의 영건들과 인연이 무척 깊으며 함께 작은 성공을 맛보기도 했지만 큰 좌절을 함께 겪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야인생활끝에 감독이 된 그는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고심하는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래전 그와 함께했던 영건들은 현재 모두 엘지에 남아있고 또한 마운드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아이들인 임정우, 윤지웅, 신동훈, 임지섭이 그에게 숙제가 되고 있다. 엘지 트윈스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주역이 될 새로운 양상문의 아이들이 2015년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