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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Story/The Legend

최초의 명예의 전당 , 그리고 타이 콥(Ty Cobb)

1936년 유구한 메이저리그(MLB)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헌액될 선수들을 선정하기 위한 투표가 있었다.

 

투표결과 5명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선정되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이들을 최초의 5인(The original five) 이라고 하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타이 콥 (Tyrus Raymond Cobb, 98.23%)

호너스 와그너 (Honus Wagner, 95.13%)

베이브 루스 (George Herman Ruth, 95.13%)

크리스티 매튜슨(Christopher Mathewson, 90.71%)

월터 존슨(Walter Perry Johnson, 83.63%)


 

최초의 투표인만큼 아쉽게 이날 선정되지 못한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했는데 그 중 몇명은 다음과 같다.


사이 영 (Denton True Young, 1937년 헌액)

로저스 혼스비 (Rogers Hornsby, 1942년 헌액)

조지 시슬러 (George Harold Sisler, 1939년 헌액)

피트 알렉산더 (Pete Alexander, 1938년 헌액)

루 게릭 (Henry Louis Gehrig, 1939년 헌액)

지미 팍스 (James Emory Foxx, 1951년 헌액)

레프티 그로브 (Lefty Grove, 1947년 헌액)

 

선정된 자나 그렇지 못한 자 모두 메이저리그를 빛낸 전설들인데 이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높은 득표율로 선정된 선수인 타이 콥은 과연 어떤 선수였을까?

<배팅 포즈를 취하고 있는 타이 콥>

 

 

"I never could stand losing"

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 


"Second place didn't interest me"

나는 2등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승리를 향한 집념이 가장 강하면서 동시에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친 것으로 알려져있는 타이 콥(Ty Cobb)은 1886년 조지아주의 내로우 출신이다. 그의 별명은 "조지아산 복숭아 (The Georgia Peach)". 타이 콥은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최고의 선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1905년 만 18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데뷔 후 디트로이트에서 22년간 뛰었으며 그 중 마지막 6년인 1921년부터 1926년까지는 감독겸 선수로 활약했다. 아쉽게도 커리어 마지막 2년은 이적하여 필라델피아에서 뛰었으며 사상 최초로 4,000안타를 기록한 뒤 그곳에서 은퇴했다. 타이콥은 경기장의 모든 곳으로 안타를 칠 수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배팅실력을 갖고 있었으며 동시에 매우 빠른 선수였다.

<타이 콥의 타격장면, 포수위치도 그렇고 지금과는 좀 차이가 있다.>

 

 

그는 1907년부터 9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의 타격왕이었으며 그 후 3번을 더해 총 12번의 타격왕(1위)을 차지했다. 또한 1911년, 1912년, 1922년 3번의 4할 타율 달성을 포함하여 무려 23년 연속 3할을 기록한 타자로 통산타율은 0.367.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불멸의 기록이다.

 

타이 콥의 최고의 시즌은 1911년으로 홈런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격부문인 타율, 출루율, 장타율, 타점, 최다안타, 최다득점, 도루 등에서 1위를 기록하고 시즌 MVP에 선정되었다. 타이 콥이 등장하기 이전 만년 하위팀이었던 디트로이트는 타이 콥의 등장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강자의 반열에 올라 3번의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아쉽게도 모두 우승에는 실패했다.

 

타이 콥은 통산 기록은 메이저리그 24시즌동안 3,035경기, 11,429타수, 4,191안타, AVG 0.367, 117홈런, 1,938타점, 892도루. 메이저리그 130년 역사에서 4,000개가 넘는 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타이 콥(2위)과 피트 로즈(4,256개, 1위) 뿐이다.

 

참고로 일본프로야구(NPB)의 통산안타 1위는 재일동포인 장훈 (하리모토 이사오)의 3,085안타이며 한국프로야구(KBO)의 통산안타 1위는 "양신" 양준혁의 2,318 안타이다.

<질주중인 타이 콥>

 

<타이 콥의 통산기록, 그의 방망이는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특히나 매우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로 유명한데 6번의 도루왕, 892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동안 무려 52개의 홈스틸에 성공한 엽기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타이 콥의 저돌적인 주루플레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 엄청 유명한 사진이다.>

 

 

또한 한 이닝에 안타나 볼넷으로 1루에 출루한 뒤 연속해서 2루도루, 3루도루, 홈스틸을 시도하는 등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주루플레이를 시전했는데 그는 이런 플레이를 총 5번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루에 출루한 후 후속타자가 번트를 대면 거의 대부분 3루까지 진루했다. 당시에 수비백업 개념이 없어서 가능했는데 이러한 그를 막고자 번트수비시 백업개념이 생겼다고...

<이렇게 얌전히(?) 들어갈 때도 있었다, 흙먼지 봐라...>

 

 

그는 타자로서 그리고 야수로서 당대 최고의 선수였고 훗날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영원한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 MLB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월터 존슨" 보다 높은 득표율로 선정되었는데 만장일치에서 단 4표가 부족했다. (226표 중 222표 획득)

 

<최초로 그리고 최고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타이 콥>

 


하지만 야구선수로서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플레이도 주저하지않았던 매우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선수였으며 이런 그에게 야유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기장 안팎을 가리지 않고 쫒아갔다. 심지어 관중석에 앉아있는 팬일지리도.....

 

뭐 백번 욕먹어도 할말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동안 워낙 쌓아둔게 많다보니 그의 악행은 이후 소문과 추측이 더해져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 결과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에 승부조작, 불법도박까지 손댄 그야말로 인간막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장례식 때 참여한 야구인은 단 3명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몇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타이 콥 뿐만 아니라 당시 백인들은 모두 인종에 대한 편견이 있었으며 승부조작 의혹은 그와 더이상 재계약하지 않으려는 구단의 꼼수였고 그의 장례식은 애초에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룰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도 그다지 신뢰도가 높지는 않다.)

 

당시 많은 야구인들이 화려한 선수생활과 달리 은퇴 후 경제적인 고충을 겪는 경우가 많았지만 타이 콥은 선수시절부터 헛된 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는 재테크의 1인자였으며 은퇴 후 사업가로서 변신에도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쌓아 후반기에는 각종 자선활동에 참가하며 지냈다.

 

은퇴당시 타이 콥은 은퇴 90여개의 타격기록을 남겼으며 통산타율 0.367, 최다타격왕 12회, 최다 홈스틸 52회 등 30여개의 기록은 여전히 불멸의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아있다.

<"한판 붙어볼까" 라고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