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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Story/The Legend

독가스에 쓰러진 영웅, 크리스티 매튜슨

크리스티 매튜슨(Christopher "Christy" Mathewson)은 신장 180cm, 체중 90kg의 우완투수로 1900년 뉴욕 자이언츠에 (현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한 이후 17년간 활약한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이다.

 

평상시 동료들에게 "Matty"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포스트 시즌에서 어메이징한 활약으로 "Big Six"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73승을 올려 피트 알렉산더와 함께 역대 다승부문 3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5인(The original five)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뉴욕 자이언츠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크리스티 매튜슨>

 

 

그는 명예의 전당 선정 투표에서 90.7%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타이 콥(Ty Cobb, 98.2%), 베이브 루스(Babe Ruth, 95.1%),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 95.1%)에 이어 4번째로 높은 득표율로 선정됐으며 이는 투수로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이다. 이는 통산 511승의 사이 영(Cy Young, 49.1%), 통산 417승의 월터 존슨(Walter Johnson, 83.63%로 선정)보다도 높은 득표율인데 그와 함께 역대 다승부분 공동 3위에 위치한 피트 알렉산더 (Pete Alexander)가 24.3%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의 위대함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더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크리스티 매튜슨의 다이나믹한 투구모습>

 

<크리스티 매튜슨의 통산기록, 출처 : mlb.com>

 

 

크리스티 매튜슨은 MLB통산 17시즌간 활약하면서 636경기에 출장하여 4780 2/3 이닝을 던졌으며 373승(3위) 188패, ERA 2.13 (8위), 79 완봉승(3위), 탈삼진 2,502개를 기록했다. 그는 통산 다승, 평균자책점, 완봉승 등 투수 3개 부문 Top 10 에 포함된 유일한 선수이다.

 

피트 알렉산더와 함께 내셔널리그 통산 다승부문 1위이며 1908년에 기록한 37승은 역시 1900년대 이후 내셔널리그 단일시즌 최다승이다. (아메리칸리그 기록은 1908년 에드 월시의 40승.) 그의 주무기는 준수한 직구와 정교한 제구였는데 이외에 그는 "Fade Away (사라지는 공)" 라 불리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페이드어웨이는 현재의 스크류볼에 해당되는 것인데 던질때 엄청난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요즘 투수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볼이다.

 

그는 커브와 동일한 투구폼에서 이 페이드어웨이를 구사했는데 던지는 순간 워낙 고통이 심해서 한 경기에 10개정도만 사용했다. 타자입장에서 커브로 생각한 공이 스윙하는 순간 몸쪽으로 파고 들어왔기 때문에 아마도 공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크리스트 매튜슨이 위대한 투수로서 추앙받는 이유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음에도 매우 절제된 생활을 하여 당시 난잡한 이미지였던 야구선수에 대한 세간의 선입견을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1900년 입단당시 모습, 바른생활 사나이다운 풍모이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으로서 항상 용모단정했으며 절제된 생활로 유명했는데 이는 처음 야구선수가 되고자 했을 때 반대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약속한 것은 야구선수로 성공해도 꼭 일요일 예배는 거르지 않기로 한 것. 그는 1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서 한번도 일요일 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고 이런 이유로 "The Christian Gentleman" 이란 별명도 추가되었다. 

 

다른 선수들이 음주, 도박, 여성편력등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동안 그는 독서, 산책, 골프등의 취미를 즐겼으며 또한 자신의 구질과 유명 선수들의 업적등을 틈틈이 연구하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드문 인텔리한 선수였다. (당시에 그와 같은 대졸선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뉴욕 자이언츠 팬들은 물론이고 상대팀 팬들마저도 그를 좋아했으며 이는 야구기자들도 다르지 않아 그의 스포츠맨쉽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가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경기는 마치 축제의 장과 같아서 항상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함성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보다 야구를 잘했던 선수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그와 같이 모범이 되는 선수는 없었던 것이 아마도 그가 투수로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계기가 아닐까 싶다.

<1936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크리스티 매튜슨>

 

 

1880년 펜실베니아주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크리스티 매튜슨은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말쑥한 이미지를 가진 아이였지만 야구팀과 풋볼팀에서 동시에 활약할 정도로 운동에 대한 재능도 풍부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부모의 영향으로 올곧은 성품을 갖고 있었으며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반장까지 맡는 등 야구와 풋볼을 하면서도 학업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Bucknell University 동료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 두번째가 크리스티 매튜슨이다.>

 

 

1900년 우여곡절끝에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한 매튜슨은 이듬해 1901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여 20승17패, ERA 2.41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당시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호레이스 포겔(Horace Fogel) 은 탐탁치 않았는지 그에게 1루수, 유격수, 외야수 훈련을 시키며 타자로 전향하는 것을 고려했다. 자칫하면 위대한 투수 한명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902년 명장 존 맥그로(John McGraw)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타자전향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존 맥그로는 크리스티 매튜슨을 투수로서 집중할 수 있게했고 이에 화답하듯 크리스티 매튜슨은 1903년부터 1914년까지 12년 연속 22승이상을 거두게 된다.

 

뭐 결과적으로는 희대의 뻘짓이 될뻔했지만 포겔감독의 생각도 그리 황당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창시절에 당연히 타자와 투수를 겸했던 크리스티 매튜슨은 항상 투수보다는 타격에 좀 더 재능이 있었다고 평가받았다.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포겔 감독이 투수보다 타자로서 그의 능력을 더 높이 봤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존 맥그로와 함께있는 크리스티 매튜슨, 당시 원정유니폼이다.>

 


감독과 선수관계 이상으로 절친했던 맥그로와 매튜슨은 이후 찰떡궁합을 과시했고 매튜슨은 덕아웃의 조용한 리더로써 팀을 이끌어 맥그로가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크리스티 매튜슨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시즌인 1905년. 새로운 포수 로저 브레스나한(Roger Bresnahan)이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크리스티 매튜슨의 가장 화려한 시즌이 시작되었다. (역시 이 당시에도 포수의 중요성이...)

<크리스티 매튜슨과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로저 브레스나한>

 

 

로저 브레스나한(1945년 명예의 전당 입성)은 상대타자의 약점을 꿰뚫고 있던 포수였는데 이러한 베테랑 포수가 핀포인트 제구를 갖춘 S급 투수를 만난 것이다. 크리스티 매튜슨은 이 시즌에 338이닝을 던지면서 단 64개의 볼넷만을 내주는 정교한 피칭으로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전체 성적은 31승 9패 (8완봉), ERA 1.28, 탈삼진 206개를 기록했는데 8번의 완봉승 중 단 90분만에 끝난 경기도 있었다고...

 

그리고 대망의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만났는데 크리스티 매튜슨은 첫 경기에서 4안타 완봉승, 3번째 경기에서 4안타 완봉승, 5번째 경기에서 6안타 완봉승을 거두는 전설의 3연봉을 달성했고 당연히 팀은 월드시리즈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단 6일동안 3번 상대를 만나 모두 완투하면서 14안타만 내준 완벽한 피칭이었다.

<1905년 월드시리즈 1차전의 크리스티 매튜슨>

 

 

1906년에는 디프테리아(법정 전염병)에 걸려 시즌 내내 고생하는 와중에도 260이닝을 던져 22승 12패, ERA 2.97 로 활약한 그는 1908년 37승, ERA 1.43, 탈삼진 259 개로 다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마지막 경기에 시카고 컵스에게 패배하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이 무산된 것. 자이언츠의 추격을 따돌리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컵스가 결국 우승했는데 컵스는 이 1908년 우승이 마지막 우승이다.

 

1913년 다시 매튜슨은 300이닝을 던지며 2.0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자이언츠는 101승을 올려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이번엔 필라델피아에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다. 1916년 하락세였던 팀을 떠나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된 그는 자신의 17년 선수생활의 마지막 경기로 오랜 라이벌이었던 시카코 컵스의 전설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Three Finger" Brown) 과의 일전을 택했고 두 오랜 라이벌의 마지막 게임은 난타전 끝에 크리스티 매튜슨의 신시내티 레즈가 10-8로 승리했다.

<오랜 라이벌인 모데카이 브라운, 그는 심지어 한 손가락이 없는 투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매튜슨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타이 콥, 조지 시슬러 등과 함께 군에 입대했다. 당시 이미 은퇴한 후인 그는 나이가 많아 면제대상이었지만 자원입대했는데(화학병, 대위) 불운하게도 훈련도중 유독가스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가스를 흡입한 크리스티 매튜슨은 호흡기에 큰 손상을 입었고 이후 폐손상으로 인한 결핵으로 오랜시간 고통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야구계로 돌아왔으나 대부분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7년뒤인 1925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입대당시 아내와 같이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