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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Story/The Legend

시카고 컵스의 전설이 된, "Mr. Cubs" 어니 뱅크스

2015년 1월 24일, 시카고 컵스 최초의 흑인선수이자 컵스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14번), 그리고 유격수 최초로 500홈런을 달성한 "Mr. Cubs" 어니 뱅크스(Ernest "Ernie" Banks)가 향년 84세로 타계했다.

 

그는 위대한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누구보다 진실되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야구팬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은 사람이었다. 

<1953년 데뷔 시즌의 어니 뱅크스>

 

 

어니 뱅크스는 "Mr. Cub", "Mr. Sunshine"으로 불릴 정도로 컵스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싸인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식사중인 경우에도...나중엔 오히려 팬들이 나서서 최소한 식사시간만큼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고..

 

그는 메이저리그의 최고의 인기구단 중 하나인 시카고 컵스에서 19시즌간 활약하면서 11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58년과 1959년 내셔널리그 최초로 2년 연속 MVP에 선정되었다. 그는 MLB역사상 단일시즌 40홈런이상을 달성한 최초의 유격수였으며 실질적인 최초의 유격수 홈런왕이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4년연속 40홈런을 달성한 어니 뱅크스는 시카고 컵스소속으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선수이며 가장 많이 타석에 들어선 선수이기도 하다. 2번의 MVP에 선정된 유일한 컵스선수인 어니 뱅크스는 시카고 컵스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되었고 컵스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Wrigley Field)의 좌측 폴대에는 그의 등번호 14번이 항상 휘날리고 있다.

<리글리 필드의 좌측 폴대, 지금은 몇몇 선수가 추가되었다.>

 

 

1931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태어난 어니 뱅크스는 어린시절 세미프로팀에서 투수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함께 야구를 시작했고 고교시절에는 육상, 농구, 풋볼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러한 재능을 인정받아 당시 니그로리그 최고의 명문팀이었던 캔자스시티 모낙스(Kansas City Monarchs)에 입단한 어니 뱅크스는 니그로리그의 전설들인 사첼 페이지(Satchel Paige), 조쉬 깁슨(Josh Gibson),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같은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어니 뱅크스는 입대하였고 1951년 3월까지 약 2년반동안 한국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모낙스로 복귀한 어니 뱅크스는 타율 0.386와 20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재능이 여전함을 증명했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카고 컵스가 그의 영입을 결정했다. 1953년 재키 로빈슨의 역사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이후 6년만에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최초의 흑인선수가 된 것이다.

 

<자신의 동상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어니 뱅크스>

 

 

1953년 9월17일 어니 뱅크스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 있었고 그는 잔여경기 10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장래 주전 유격수로 낙점을 받았다. 1954년 본격적인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어니 뱅크스는 컵스의 전경기에 출전했고 0.275의 타율과 19홈런을 기록하며 만만치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그리고 1955년 자신의 배트스피드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31온스짜리 가벼운 배트로 바꾼 어니 뱅크스는 역시 전경기에 출장하며 무려 44홈런을 기록함으로써 MLB 최초로 40홈런 이상을 달성한 유격수가 되었다. 당시 유격수들은 대개 작고 민첩한 선수들로 10개안팎의 홈런을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슬러거가 등장한 셈이다. 

<앳띤 모습의 어니 뱅크스, 누가 이런 그를 무시무시한 홈런타자로 볼것인가>

 

 

그러나 1956년 손목부상으로 고생하며 28홈런으로 숨고르기를 한 어니 뱅크스는 1957년 다시 43홈런을 쏘아올리며 102타점을 기록했고 1958년에는 47홈런, 129타점, 0.614의 장타율로 각각 리그 수위에 오르며 MVP 에 선정되었다.당시 시카고 컵스는 엄청난 암흑기를 보내는 시기였는데 부진한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MVP를 차지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1959년 어니 뱅크스는 다시 45홈런(2위), 143타점을 폭발시키는 어메이징한 활약으로 내셔널리그 최초로 2년 연속 MVP에 선정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어니 뱅크스의 캐치 모습>

 

 

1960년 41홈런을 기록하며 다시 홈런왕에 오른 어니 뱅크스는 생애 최초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는 커리어 내내 수비에서 약점을 보였던 그에게 대단히 의미있는 수상이었다. 1961년 시력에 이상이 생긴 어니 뱅크스는 23홈런으로 다소 부진했으며 시즌 종료 후 1루수로 포지션을 완전히 이동한다. 즉, 1960년의 골든글러브가 유격수로서 유일한 골든글러브가 되고만 것이다.

 

1962년 31세의 어니 뱅크스는 1루수로 전향한 후 37홈런을 기록했지만 이후에는 이렇다할 큰 활약은 하지못했다. 1966년 최하위를 기록한 시카고 컵스는 1967년 어니 뱅크스의 데뷔이후 최초로 하위권을 탈출했다. (하지만 단 그뿐이었다. 그 이상은 없다.) 1968년 37세의 어니 뱅크스는 32홈런을 기록하며 분전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30홈런 시즌이었다. 시카고 컵스는 그의 분전으로 시즌초반 승승장구했으나 후반기에 붕괴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어니 뱅크스의 유일한 포스트시즌 진출 기회였던 것 같다.

 

1970년 5월 12일 드디어 어니 뱅크스는 MLB역사상 9번째 그리고 유격수 최초로 500홈런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현재까지도 유격수 출신 500홈런 달성자는 전체 25명 중 어니 뱅크스와 (512개)와 알레스 로드리게스(654개) 단 2명뿐이다. 그리고 1971년 512홈런을 기록한 어니 뱅크스는 리글리 필드에서만 총 29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아쉬운 19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강한 손목과 빠른 스윙으로 홈런을 만들었다.>

 

<어니 뱅크스의 통산기록, 출처 : mlb.com>

 

 

어니 뱅크스는 19시즌간 시카고 컵스에서만 활약했으며 총 2,528경기, 9,421타수 2,383안타로 타율 0.274, 512홈런, 1,636타점을 기록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어니 뱅크스가 활약한 19년동안 시카고 컵스가 계속 약팀이었단 사실. 어니 뱅크스는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을 경험하지 못한 선수들중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선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구를 사랑하고 컵스를 사랑했으며 항상 온화한 미소와 밝은 얼굴로 다녀 "Mr. Cub", "Mr. Sunshine"으로 불리는 등 컵스 역사상 가장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 그리고 1977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후보가 된 어니 뱅크스는 83.8%의 득표율로 후보 첫해에 바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어니 뱅크스>

 

 

이제는 시카고 컵스의 전설이 된 어니 뱅크스, 시카고 컵스의 영광의 시절이 언제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항상 환하게 컵스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거, 야구하기 정말 딱 좋은 날씨네..

오늘은 한 게임 더 어때? 좋아?"

-어니 뱅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