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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Story/The Legend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의 사나이, 그로버 알렉산더

메이저리그 기록을 보면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말로 하면 3관왕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타자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려면 타율(AVG), 홈런(HR), 타점(RBI) 에서 동시에 1위에 올라야 하고 투수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 위해선 다승(W), 평균자책점(ERA), 탈삼진(SO) 부문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해야 한다.

 

투수부문 트리플 크라운은 메이저리그 통산 38번 기록되었는데 가장 최근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투수는 2011년 AL과 NL 에서 사이좋게 나왔다. AL은 디트로이트의 저스틴 벌랜더(Justin Verlander)가 24승, era 2.40, 탈삼진 250개를 기록하면서 차지했고 NL에서는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Clayton Kershaw)가 21승, era 2.28, 탈삼진 248개를 기록하면서 차지했다.

<2011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클레이튼 커쇼>

 

 

그렇다면 트리플 크라운을 가장  많이 기록한 투수는 누구일까? 공식적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가장 많이 달성한 투수는 월터 존슨, 샌디 쿠팩스, 그로버 알렉산더 이 3명으로 이들이 달성한 트리플 크라운 횟수는 모두 3회이다.

 

음~~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저 3명중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4번 달성한 선수가 있었다. 훗날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통산 트리플 크라운을 4번 달성한 유일한 투수가 되었을 선수는 바로 "그로버 알렉산더" 이다.

 

그로버 알렉산더의 이름은 Grover Cleveland Alexander이다. 미국 대통령 이름을 통째로 따서 지은 이름인데 이 이름보다는 어릴 때 애칭인 피트 알렉산더(Pete Alexander)로 많이 알려져있다. 별명은 "Old Pete" 이다. (이하에서는 피트 알렉산더로 부르기로 한다.)

 

그는 1900년대 크리스티 매튜슨과 함께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투수로서 공교롭게 매튜슨과 같이 통산 373승을 올려 내셔널리그 최다승 투수로 함께 남아있다. (MLB 통산 공동 3위에 해당한다.) 또한 피트 알렉산더는 1915년부터 1917년까지 3년연속 30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크리스티 매튜슨과 함께 유이하게 달성한 대기록이다. 

 

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카고 컵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등 3팀에서 활약했는데 단 3년만 활약한 카디널스에서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반지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것은 카디널스의 첫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1915년 28살의 피트 알렉산더, 왜 별명이 "Old Pete"인지 감이온다.>

 

 

1887년 미국 네브라스카주에서 태어난 피트 알렉산더는 어렸을 때 돌멩이를 던져 새를 잡는데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새가 어디든 앉아만 있으면 돌멩이로 맞출 수 있었다는데 이것이 천부적인 제구력을 의미하는 일화일까?(뭐 일단 확실한건 지금 돌멩이를 새한테 던지면 엄청나게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살부터 세미프로팀에서 활약했는데 22살이던 1909년 2루로 뛰던 중 유격수의 송구가 머리를 강타하면서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부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는데 이때의 좋은 활약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하게 되었다.

 

1911년 24살의 피트 알렉산더는 드디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데뷔했고 첫해 28승, era 2.57, 탈삼진 227개를 기록하는 대단한 활약을 했다. 그가 루키시즌에 거둔 28승은 지금까지도 역대 신인 최다승 기록이다. 게다가 시즌 도중 보스턴 러슬러스(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있던 사이 영(Cy Young)과 맞대결해서 1 : 0 으로 완봉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참고로 1911년은 사이 영의 마지막 시즌이다.)

 

이러한 활약을 이듬해에도 계속되었고 피트 알렉산더는 1912년 19승, 1913년 22승 1914년 27승을 올리며 계속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1915년 그는 49경기에 출전하여 31승 10패, era 1.12, 탈삼진 241개로 첫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31승중 12승이 완봉승(Shut Out)이었는데 당시 단일시즌 최다완봉승 기록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던 피트 알렉산더>

 

 

그리고 내셔널리그에서 우승한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는데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석패하면서 아쉽게 월드시리즈와는 인연을 맺진 못하였다. 아쉬웠던 한해를 보냈지만 1913년 피트 알렉산더는 여전한 구위로 33승 12패, era 1.55, 탈삼진 167개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게다가 16번 완봉승으로 종전 자신의 최다 완봉승을 경신했는데 이 16완봉승이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 완봉승기록이다. (그냥 16승도 힘든데 16완봉승이라니...헐)

 

1917년에는 30승 13패, era 1.83, 탈삼진 200개로 다시 한번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단일시즌 3년연속 30승은 크리스티 매튜슨에 이어 2번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 3년연속 트리플 크라운은 아쉽게 취소되었다. 훗날 규정이닝이 개정되면서 한 불펜투수가 기록한 era 1.44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규정이닝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피트 알렉산더는 최초의 3년연속 30승과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기록과 통산 4번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뭐 규정은 규정이니.... 

 

수준급의 강속구와 낙차큰 커브, 절묘한 제구력, 그리고 강철같은 심장까지 갖춘 피트 알렉산더는 AL의 월터 존슨과 더불어 이렇게 오랜 기간 리그를 지배할 것 처럼 보였지만 이때부터 불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1차 대전 발발 후 알렉산더는 징집대상이 되었고 이 사실을 안 필리스는 바로 그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해버렸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컵스에서 단 3게임을 뛴 후 군에 입대하게 된다. 당시 NL을 지배했던 또 한명의 투수인 크리스티 매튜슨이 유독가스에 노출되어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피트 알렉산더도 전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한쪽 청력을 잃을 정도로 계속되는 포격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과중되어 그만 간질이 발생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피트 알렉산더는 메이저리그에 복귀했지만 전쟁에 지친 심신으로 이미 예전의 강속구는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술이 안타깝게도 차지해버렸다.

 

1919년 시카고 컵스로 복귀한 후 16승 11패, era 1.72로 강속구없이도 준수한 성적을 거둔 피트 알렉산더는 다음해인 1920년 27승 14패, era 1.91, 탈삼진 173개로 4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나중에 3개로 정정)

<시카고 컵스 시절>

 

 

하지만 그는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갈수록 술에 의존했으며 간질은 점점 더 심해졌다. 늘 술에 취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지탄받았던 그는 결국 1926년 시즌 도중에 컵스에서 방출되었고 간신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 영입은 카디널스에게 꿀영입이 되었다.)

 

카디널스로 이적한 알렉산더는 9승을 올리며 카디널스의 선전에 힘을 보탰고 팀은 11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었다.월드시리즈에서 양키즈를 만난 피트 알렉산더는 베이브 루스, 루 게릭, 토니 라제리 등의 강타선을 상대로 2차전, 6차전에 등판하여 모두 승리했으며 마지막 7차전엔 마무리로 나와 실점없이경기를 마쳐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것이 카디널스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었으며 동시에 피트 알렉산더의 유일한 월드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1927년 40세가 된 피트 알렉산더는 자신의 통산 9번째, 그리고 마지막 20승을 달성했으며 3년뒤인 1930년에 필라델피아로 복귀하고 그곳에서 43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1928년 41세의(??) 피트 알렉산더>

 

<피트 알렉산더의 통산기록, 출처 : mlb.com>

 

피트 알렉산더는 통산 20시즌동안 총696경기에 나와 5,190이닝을 던졌으며 373승 208패, era 2.56, 탈삼진 2,198개, 90완봉승을 기록했다. 또한 그가 거둔 3번의 트리플 크라운과 3년 연속 30승 기록은 아마도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피트 알렉산더는 1938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 (80.82%) 되었지만 은퇴 후 그의 삶은 메이저리그를 주름답던 대스타의 모습은 아니었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과 간질로 고통받으면서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월드시리즈까지 우승했던 그이지만 야구를 떠난 후엔 술에만 의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내셔널리그 최다승을 올린 두 명의 천재투수가 동시대에 나와 똑같이 대활약을 펼친 후 역시 똑같이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은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1938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피트 알렉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