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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Story/Pitching

승리를 부르는 남자들...

야구경기에서 "투수(投手)"란 말그대로 타자에게 공을 던져주는 선수로 영어로는 "Picher"로 표시된다. 야구경기는 이 투수가 포수를 향해 공을 던져야 비로소 경기가 진행되고 또한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공략할 수 있어야 득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기에서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야구에서 투수들은 대개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 것이다.  

 

1845년 뉴욕의 한 은행원이었던 "알렉산더 카트라이트" (Alexander Cartwright)가 최초의 야규규약집 "니커보커 룰" (Knickerbocker Rules) 을 발간하면서 시작된 근대야구는 현재의 야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특히 투수에 대한 개념과 비중이 현재보다 상당히 적은 편이었는데 이는 당시 투수의 개념이 마치 배팅볼 투수와 같이 타자가 타격을 할 수 있도록 공을 던져주는 보조적인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스트라이크(Strike), 볼(Ball)의 개념이 없었고 당연히 삼진아웃(Strikeout)도 없었다. 타자가 스윙을 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당시 투수들은 허리위로 공을 던지는 것이 아예 금지되어 있었다. 즉, 투수는 마치 배구와 같이 서브를 넣는 선수의 개념이었고 타자가 투수의 공을 쳐야 비로소 경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야구인기가 늘어나고 전문 클럽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점점 투수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창기 속칭 있는분들의 취미생활이었던 야구(Baseball)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하나의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고 승부가 치열해지자 투수들이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게된 것. 즉, 투수들은 점점 더 공을 쎄게 던지기 시작했고 될수있는한 타자에게 먼 곳으로 공을 던졌다. 이에 질세라 타자들은 타격을 하지않는 방법으로 대응했고 투수들과 타자들간에 신경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858년 스트라이크(Strike)와 볼(Ball)의 개념이 생겼고, 곧 삼진아웃(Strikeout)과 볼넷(Base on balls) 도 만들어졌다. 1872년에는 손목스냅을 활용한 투구(Pitching)가 가능해져 각종 변화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1884년에는 아예 투수가 허리위로 공을 던지는 것(Over-throwing)을 금지했던 조항을 삭제했다. 즉, 투수에 대한 모든 규제가 사라진 것이다.

 

이후 투수들의 피칭(Pitching)은 점점 진화하였고 매우 강력해졌으며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강력한 패스트볼과 현란한 변화구로 무장한 투수들은 상대타자들을 윽박질렀고 우렁차게 울리는 심판의 삼진콜은 팬들을 열광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의 승패가 확정되면 팀에 1승이 추가되는 것처럼 그날의 승리를 이끈 투수에게도 1승 (Win)이 주어졌다. 물론 패배한 팀의 투수에게는 1패(Lose)가 기록되었다. 마치 한팀의 성적처럼 투수들의 전적도 몇승 몇패 이런 식으로 기록되었다. 당연히 다른 선수들보다 유독 많은 승리를 기록하는 투수들은 각팀의 간판스타가 되었고 팬들은 이들이 등판하는 날을 기다렸다. 그들은 누구보다 많은 승리를 팀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선물했고 어느순간 "에이스" (Ace)라고 불리게 되었다.

<1888년 야구장의 모습>

 

 

 

   승리를 부르는 남자들...

 

1869년 내셔널리그(NL)가 창설되면서 시작된 미국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팀에 가장 많은 승리를 안겨준 선수는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 (Cleveland Spiders), 보스턴 아메리칸스 (Boston Americans) 등에서 22년간 활약하면서 통산 511승을 올린 "사이 영" (Denton True "Cy" Young) 이다. 그는 현재 프로야구가 성행하고 있는 미국(MLB), 일본(NPB), 한국(KBO) 을 통틀어 유일한 500승 투수이기도 하다. 

<사이 영은 시즌이 끝나면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 일을 했다.>

 

 

MLB 통산 다승 2위는 워싱턴 세너터스 (Washington Senators)에서만 21년간 활약하면서 통산 417승을 올린 "월터 존슨"  (Walter "The Big Train" Johnson) 이다. 특히, 존슨은 통산 110 완봉승 (shutouts) 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데 이는 한-미-일 통틀어 유일한 세자리수 완봉승이다. 어림잡아 4번의 승리중 1번이 완봉승이었단 얘긴데 당시 그의 소속팀 세너터스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점수주면 지는 것이다. 

<월터 존슨의 투구 폼은 현재의 사이드암 투수와 유사하다.>

 

사이 영과 월터 존슨은 모두 아메리칸 리그(AL) 소속이다. 그럼 내셔널리그(NL)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팀에 가져다준 선수는 누구일까? NL에서는 나란히 373승을 거둔 뉴욕 자이언츠 (NewYork Giants)의 "크리스티 매튜슨" (Christy Mathewson) 과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adelphia Phillies) , 시카고 컵스(Chicago Cubs) 등에서 활약한 "피트 알렉산더" (Pete Alexander) 가 팬들에게 가장 많은 승리를 선물했다. 

 

그렇다면 단일시즌동안 팀에 승리를 선물한 선수들은 과연 몇승이나 기록했을까? 길고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한 시즌간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는 1884년 무려 59승을 올린 프로비던스 그레이즈 (Providence Grays)란 팀의 "찰리 래드번" (Charlie “Old Hoss” Radbourn)이다. 그는 무려 75경기, 678.2이닝동안 era 1.38 의 짠물피칭을 바탕으로 59번의 승리를 거두었고 같은 기간 그가 기록한 패전은 단 12번이다.   

<“Old Hoss” 찰리 래드번의 야구카드>

 

래드번 외에도 단일시즌 통산 다승순위는 대부분 19세기 투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당시 야구는 현대야구와 차이가 있다고 앞서 설명한만큼 20세기 이후로 한정하면 어떻게 될까? 1900년 이후 단일시즌 최다승리를 거둔 투수는 1904년 41승을 거둔 뉴욕 하이랜더스 (NewYork Highlanders)의 "잭 체스브로"  (John Dwight Chesbro) 이다. 그의 1904년 성적은 41승 12패, era 1.82. 뉴욕 하이랜더스는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의 전신으로 지금과 같이 AL소속이었으며 같은 기간 NL에서 한시즌 최다승을 거둔 투수는 1908년 37승을 거둔 앞서 소개한 "크리스티 매튜슨" 이다.

<초창기 뉴욕 양키스를 이끌었던 "Happy Jack" 존 체스브로>

 

 

1936년부터 시작된 일본프로야구(NPB)에서 통산 최다승을 거둔 투수는 20년동안 고쿠데쓰 스왈로즈(Kokutetsu Swallows), 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에서 활약한 "가네다 마사이치" (Masaichi Kaneda)로 그는 재일동포 출신으로 익히 알려져있다. 그의 한국명은 김경홍 (金慶弘)이며 일본프로야구 유일의 400승 투수로서 통산 400승 298패, 평균자책점 2.34, 365완투 (Completed Game), 82완봉승(Shut out)을 기록했다.

<가네다 마사이치는 1988년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NPB에서 단일시즌동안 가장 많은 승리를 기록한 선수는 193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러시아계 일본인 투수 "빅토르 스타루힌" (Victor Starffin)과 1961년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Nishitetsu Lions)의 "이나오 가즈히사" (Kazuhisa Inao), 이 2명이 기록한 42승이다.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300승 투수, 빅토르 스타루힌>

 

 

빅토르 스타루힌은 용병이 아닌 일본인으로 일본이름은 "스다 히로시" 이다. 그는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300승 투수이며 그의 통산 83완봉승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는 불멸의 기록이다. 이나오 가즈히사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명투수로 일본에서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님" 이말을 모르면 간첩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현 세이브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투수로 1961년 42승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는 팀의 전 이닝의 1/3을 혼자 소화한 엄청난 강철어깨였다.

<니시테츠 라이온즈에서만 14년간 활약한 이나오 가즈히사>

 

 

한국프로야구(KBO)에서 팀에 가장 많은 승리를 안긴 선수는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에서 통산 21년간 활약한 "송진우"이다. 1989년 4월 12일 데뷔하여 2009년 9월 23일 정식으로 은퇴한 송진우의 통산 기록은 210승 135패, era 3.51, 17홀드, 103세이브. 103세이브가 상당히 거슬린다. 송진우가 중무리를 뛰지않고 꾸준히 선발출장했다면 어떤 기록을 남겼을지 궁금해진다. 참고로 현역선수 가운데 최다승 투수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배영수"로서 그는 현재까지 124승을 거두고 있다.

<송진우는 통산 3,003이닝, 210승, 2,048 탈삼진을 기록하고 은퇴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임팩트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바로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일 것이다. 재일동포 출신인 장명부는 "너구리"란 별명답게 현란한 변화구로 당시 타자들을 농락했으며 팀의 100경기중 60경기에 출전, 427.1이닝을 던지는 엽기적인 활약으로 30승 16패, 6세이브, era 2.34 를 기록했다. 100년전 활약한 사이 영 정도의 이닝을 소화한 장명부의 어깨는 그해 바로 탈이 났으며 다시는 이와 같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한국프로야구가 계속되는한 장명부의 시즌 30승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게될 것이다.   

<"너구리" 장명부의 일본이름은 후쿠시 히로아키(Fukushi Hiroaki)이다.>